

얼른
내가 21살이 되던 해에 카렌은 집을 나갔다. 언젠가 이 집에서 누구 한 명 탈출할 날이 온다면 그건 내가 되리라 생각했다. 나의 어설픈 예상을 뚫고 첫 타자가 된 사람은 카렌이었다. 그 애는 짧은 편지 한 장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 가벼운 편지지가 엄마의 손끝에서 팔랑거렸다. 가족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다. 카렌은 늘 엷게 웃었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 애는 우리 중 누구도 닮지 않았다. 카렌의 출가는 우리 가족 각자에게 적잖은 흔적을 남겼다. 엄마는 종종 울었고, 아빠는 술이 늘었다. 백날 입으로만 독립을 떠들던 형은 그 일 이후 진짜로 짐을 쌌다. 결국 이 집에 마지막까지 남은 자식새끼는 내가 되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 역시 몇 달 안 되어 집을 나갔다. 자식 셋을 줄줄이 떠나보내던 부모의 표정이 가끔 떠올랐다. 그리 애절한 느낌은 아니었다.
떠나는 사람은 나일 줄 알았다. 이젠 새삼 원망스럽지도 않은 엄마랑 아빠, 쥐똥 냄새가 나는 집, 즐겁고 좆같았던 사우스 파크. 이 모든 걸 꼭 떠나보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죽지 않고 하루를 버틴 날엔, 낡은 침대에서 곯아떨어지며 짤막한 상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우스 파크는 내가 아주 가끔 들리는 고향으로만 남는 상상. 그럼에도 난 이곳을 온전히 지워내진 못 할 것이다. 자잘하게 남은 좋은 기억을 모두 잊고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케니! 조만간 할로윈이네 :)
- 한 번 만날까?
집을 나간 후 카렌은 다시 사우스 파크에 돌아오지 않았다. 오직 내게만 종종 연락을 취할 뿐이었다. 가족들이 내게 카렌의 근황을 물을 때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기 바빴다. 난 그 애와 달리 집을 나온 후에도 가족을 아예 끊어낼 수 없었다. 얼굴 좀 보자 하면 귀찮으면서도 버스 티켓을 끊었고, 통화가 걸려오면 잠시 뜸을 들이다 결국 받았다. 그래도 수화기 너머 부모의 목소리는 자상할 때가 많았다. 카렌은 달랐다. 나를 제외한 가족이 연락을 하면 응답이 없었고, 아주 가끔 간결한 메시지만 남겼다. 잘 지내고 있어요. 요새 바빠요. 다정한 그 애의 어투와 달리 화면에 박힌 텍스트는 건조하기만 했다.